줄거리
영화관에서 '귀향'을 봤을 때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14살 소녀 정민(강하나)이 일자리를 준다는 일본군의 달콤한 말에 속아 가족과 생이별하는 장면부터 마음이 무너졌다. 1943년, 정민은 다른 소녀들과 함께 중국으로 끌려가 '위안소'라는 이름의 성노예 수용소에 갇혀 참혹한 나날을 보낸다. 그곳에서 만난 영옥(최리)과 서로 의지하며 지옥 같은 현실을 버텨내는 두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계속 눈물이 났다. 영화는 1991년 현재 시점으로도 넘어가는데, 이제는 할머니가 된 정민(손숙)이 알츠하이머를 앓으면서도 과거의 기억에 시달리는 모습이 나온다. 무속인 은이(정인기)를 통해 위안소에서 함께했던 영옥의 넋을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과거와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런 무거운 주제의 영화는 피하는 편인데,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보게 됐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구성이 처음엔 좀 혼란스러웠지만, 점점 두 시간대가 하나의 이야기로 맞물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민이 겪은 고통과 트라우마,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영옥의 영혼을 달래는 굿 장면은 한국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과 치유의 힘을 보여주면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껴안아야 할 역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
사회적 의미
이 영화의 가치는 단순히 잘 만든 영화를 넘어선다고 생각한다. 2016년 개봉 당시만 해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로 사회적 논란이 뜨거웠던 시기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는 "역사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 같다. 특히 놀라웠던 건 영화 자체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7만 5천여 명의 일반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완성했다니,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다. 사실 이런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가 꼭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게 정말 의미가 깊다.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해 뉴스로만 접했지, 피해자들의 실제 경험이 어땠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귀향'은 그들을 단순한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고,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했던 소녀들의 이야기로 그려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어떤 장면들은 너무 가슴 아파서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건 우리가 역사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일임을 깨달았다. 그들이 겪은 일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후에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수요집회에 참석하게 됐다고 한다. 나도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됐다.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영화들은 많지만, '귀향'처럼 실제 행동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작품은 드문 것 같다. 그리고 무속 의례를 통한 치유라는 접근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서구적인 방식이 아닌, 우리 전통 문화 속에서 상처를 어루만지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 더 와닿았다. 결국 위안부 문제는 법적, 외교적 해결 뿐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치유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
총평
처음엔 지인들이 "너무 슬프고 힘든 영화"라고 해서 망설였는데, 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조정래 감독은 정말 힘든 주제를 다루면서도 선정적이거나 감정을 과하게 자극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그들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섬세한 균형감각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이 처음엔 좀 낯설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 이해가 됐다.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상처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도 정말 좋았다. 특히 어린 소녀 정민 역의 강하나는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그 어린 나이에 이렇게 깊은 감정 연기를 해낸 것이 놀라웠다. 노년의 정민 역을 맡은 손숙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두 배우가 연기한 같은 인물의 서로 다른 시간대가 하나로 느껴질 정도로 연기의 톤이 일치했다. 영옥 역의 최리도 짧은 등장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고, 무속인 은이 역의 정인기는 현실과 영적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영화 말미에 실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냥 펑펑 울어버렸다. 소녀 시절의 자신들과 마주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너무 가슴 아프면서도 아름다웠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는 아니라서 일부 CG 장면이나 세트가 좀 어색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술적인 완성도보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와 감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화려한 제작비로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진정성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극장에서 나올 때는 몸이 무거웠지만, 며칠이 지나도 계속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특히 마지막에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귀향'은 분명 보기 힘든 영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아픈 부분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때만이 진정한 치유와 화해가 가능하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강인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이며 우리 역사의 증인임을 일깨워준다. 7만 5천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만든 이 영화는, 위안부 문제가 특정 단체나 정치 세력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영화를 본 후로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 추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