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가이 리치가 연출한 '리볼버'는 처음 봤을 때 머리가 좀 아팠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 스타뎀이 나오길래 그냥 평소처럼 터프한 액션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건 뭐 철학책을 영화로 만든 수준이었다. 주인공 제이크 그린은 7년 동안 감옥에서 썩다가 나온 남자다. 그를 감옥에 처넣은 갱단 보스 도로시 막소(레이 리오타)에게 복수하겠다는 단순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이게 갈수록 산으로 간다. 감옥에서 만난 두 남자 - 체스의 달인 존 폴이랑 대출 전문가 아비 골드의 도움으로 막소의 카지노에서 큰돈을 따는 데까지는 그럭저럭 이해가 됐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인지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주인공이 미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미친 건지 구분이 안 되기 시작한다. 결국엔 이 모든 게 제이크의 내면 싸움, 즉 자기 자신의 에고와의 전쟁이었다는 결론으로 가는데, 정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영화였다.
제이크는 감옥에서 희귀병 진단을 받고 출소하게 되는데, 그때 만난 두 남자가 제안한 '공식'을 따르기로 한다. 이 공식은 뭐 어떤 게임에서든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나? 그들은 제이크에게 감정을 완전히 버리고 기계처럼 공식만 따르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부터 영화는 점점 더 이상해진다. 제이크가 도로시에게 접근하고 그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는 과정은 꽤 흥미로웠다. 도로시가 점점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건 솔직히 꽤 통쾌했다. 근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뭐가 현실이고 뭐가 제이크의 망상인지 구분이 안 된다. 처음엔 그냥 단순한 복수극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로 바뀌더니, 마지막엔 거의 종교적인 깨달음 같은 결말로 끝난다. 뭐, 세 번 정도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영화였다.
재미 요소
이 영화의 재미는 아마도 그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좀 짜증났다. 가이 리치 감독이 평소처럼 멋진 영상미와 편집으로 눈길을 사로잡긴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더라. 스타뎀이 여기서는 평소의 터프가이가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이게 의외로 잘 어울려서 놀랐다. 레이 리오타도 미치광이 갱단 보스 역할을 정말 잘 소화한다. 특히 점점 미쳐가는 모습을 연기하는 건 그의 전문인 것 같다. 영화 장르가 뭔지 정의하기 어려운데, 표면적으로는 갱스터 영화인데 실제로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고, 결국에는 철학 수업 같은 느낌으로 끝난다. 이런 장르적 혼합이 어떤 사람에게는 매력적일 수 있겠지만, 솔직히 나는 첫 관람에서 좀 혼란스러웠다.
가이 리치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연출은 역시 일품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빠른 컷 전환, 슬로우 모션, 비선형적 스토리텔링이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제이크의 내면 갈등을 표현하는 방식이 독특한데, 엘리베이터 장면이나 거울 앞에서의 독백 장면은 정말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음악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긴장감 넘치는 추격 장면에서는 강렬한 비트가 흐르고, 제이크가 자기 내면과 싸우는, 좀 더 철학적인 장면에서는 감성적인 음악이 나온다. 이 영화는 체스 게임처럼 전략적이다. 모든 캐릭터의 행동이 어떤 큰 계획의 일부처럼 느껴지는데, 물론 결국 그 계획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끝까지 봐야 알 수 있다. 이런 전략 게임적 요소가 영화에 깊이를 더하지만, 동시에 좀 피곤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처음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이 영화에 대해 생각했다. 반복해서 보면서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복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자아와 에고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숨어 있다. 영화 곳곳에 숨겨진 힌트와 상징들이 꽤 많아서, 두 번째 볼 때는 첫 번째 볼 때 놓친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영화 속 대사는 불교 철학이나 심리학에서 따온 개념들이 많아서, 이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이런 지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일반적인 오락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에게는 좀 과부하가 될 수 있다. 나도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보니까 조금씩 이해가 되더라. 근데 그렇게까지 해서 이해해야 하는 영화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총평
'리볼버'는 가이 리치가 그 동안 해온 영화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인 것 같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나 '스내치' 같은 그의 이전 갱스터 영화들이 유머와 액션으로 무장했다면, '리볼버'는 훨씬 더 철학적이고 난해하다. 솔직히 말하면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단순한 갱스터 액션을 기대하고 본다면 꽤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액션보다는 내적 투쟁과 자아 성찰에 더 집중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후에 다시 생각해보면, 이 복잡성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 자아와 에고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스타뎀과 리오타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특히 스타뎀은 평소의 터프가이 이미지에서 벗어나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이게 의외로 잘 어울린다. 액션 장면은 여전히 멋지지만, 여기서는 주로 심리적인 갈등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오타도 점점 정신적으로 붕괴되어가는 갱스터 보스의 모습을 정말 생생하게 표현한다. 가끔 과장된 연기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오히려 이 영화의 비현실적인 분위기와 잘 맞는 것 같다. 안드레 벤자민과 빈센트 패스토어가 연기한 두 인물도 상당히 미스터리하고 흥미롭다. 이 두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제이크의 상상 속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이 모호함이 영화의 미스터리를 더 깊게 만든다. 음악과 촬영, 편집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정말 훌륭한 영화다.
다만 이 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해한 내러티브와 철학적 주제 때문에 일반적인 관객들에게는 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처음 봤을 때도 솔직히 '뭐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특히 후반부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부분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또한 영화의 철학적 메시지가 때로는 너무 직접적으로 제시되어서 좀 설교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런 스타일이 가이 리치의 이전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볼버'는 상업적 성공보다 예술적 도전을 선택한 용기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이런 복잡하고 난해한 영화를 만든 것 자체가 존중받을 만하다. 심리적 미스터리와 철학적 사색을 즐기는 관객에게는 여러 번 다시 보고 싶은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개봉 당시에는 혹평을 많이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재평가받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너무 난해하고 자기만족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 보면 오히려 그런 특이함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특히 에고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영화의 메시지는 불교 철학이나 현대 심리학과도 연결되는 꽤 흥미로운 주제다. 가이 리치의 다른 영화들이 주로 스타일과 유머로 기억된다면, '리볼버'는 가장 진지하고 사색적인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처음 봤을 때는 이해가 안 됐지만, 몇 번 더 보고 생각해보니 나름의 메시지가 있는 의미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세 번씩이나 봐야 한다는 건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뭐, 심심할 때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영화인 것 같다. 흔한 할리우드 영화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