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지난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블리츠'를 보게 됐는데, 솔직히 스티브 맥퀸 감독 작품이라길래 뭔가 기대하고 봤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런던 대공습(The Blitz) 시기를 배경으로, 게이 남성 조지(사샤 베이론 코헨)와 싱글맘 리타(안야 테일러조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런던 이스트엔드의 서민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은 매일 밤 독일군의 폭격에 시달리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나간다. 조지는 당시 사회에서 그의 성 정체성 때문에 숨어 지내야 했지만, 폭격이 시작되면 다른 주민들과 함께 방공호로 피신하며 묘한 연대감을 느낀다. 리타는 아들 조지를 전쟁의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골로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데, 아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일자리를 잃을까 하는 불안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받게 되는데, 특히 조지가 리타의 아들에게 애정을 갖고 보호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폭격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그들은 작은 일상의 행복을 지키려 하고, 서로의 취약함과 두려움을 나누며 위로를 찾는다.
역사적 배경
솔직히 나는 역사에 그렇게 밝은 편은 아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런던 대공습에 대해 더 알게 됐다. '블리츠'는 1940년 9월부터 1941년 5월까지 약 8개월 동안 나치 독일이 영국을 항복시키기 위해 런던과 다른 도시들을 폭격한 시기를 말한다. 이 기간에 독일 공군은 거의 매일 밤 폭격을 가했고, 특히 노동자 계층이 많이 사는 이스트엔드 같은 지역이 심하게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영화를 찾아보니 약 4만 3천 명의 영국 민간인이 이 대공습으로 사망했고, 런던에서만 백만 채가 넘는 집이 파괴되거나 손상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잘 보여주듯이, 전쟁 중에도 영국 사회는 계급, 성적 지향, 인종에 따른 차별이 심했다. 게이들은 공개적으로 박해받았고 동성애는 범죄로 여겨졌으며, 이런 부분이 영화에서 조지 캐릭터를 통해 잘 드러났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정부가 아이들을 도시에서 시골로 대피시키는 '오퍼레이션 피블'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점인데, 이로 인해 15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됐다고 한다. 리타가 영화에서 보여주듯,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의 안전과 가족의 생계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했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총평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건 전형적인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전쟁 영화는 전투 장면이나 영웅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데, '블리츠'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존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사샤 베이론 코헨의 연기는 정말 놀라웠는데, '보랏'이나 코미디 영화로만 알던 그가 이렇게 감정이 복잡한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니 새롭게 봤다. 안야 테일러조이도 전쟁 속에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는 엄마 역할을 정말 진정성 있게 연기했다. 영화의 색감과 화면 구성도 인상적이었는데, 어두운 색조와 좁은 공간을 통해 당시 런던 시민들이 느꼈을 답답함과 두려움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교과서에선 잘 다루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역사책에선 전쟁의 큰 흐름이나 정치적 결정만 나오지, 성소수자나 싱글맘, 평범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잘 안 나오잖아. 폭격 장면들은 정말 무섭고 실감났지만, 감독은 그런 장면보다 사람들의 반응과 대처 방식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음악과 효과음도 분위기를 잘 살렸는데, 특히 폭격기 소리와 방공호 안의 침묵 대비가 긴장감을 더했다. 솔직히 몇몇 부분은 좀 지루하기도 했고, 뒷부분에서 이야기가 조금 산만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계속 생각이 났다.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맥퀸 감독은 전쟁의 참혹함보다 그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고, 그게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영화는 너무 많아서 식상할 수도 있는데, '블리츠'는 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게 신선했다. 거창한 이야기보다 작은 개인의 일상, 역사책에 잘 안 나오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전쟁 속에서도 인간적인 관계와 연결을 중요하게 다룬 점이 좋았다. 영화를 본 후 한동안 그 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해 더 찾아보게 됐고, 특히 기록되지 않은 일상의 역사에 더 관심이 생겼다. 만약 전쟁 영화에 관심이 있거나 역사 속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블리츠'는 꼭 한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