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암살'은 2015년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한국 액션 영화로, 일제강점기 1933년을 배경으로 독립군 암살단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조선 총독부 군사령관과 친일파 거물 사업가를 제거하기 위한 암살 작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는 1911년 제암리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학살 장면으로 시작한다. 유치원생들과 함께 있던 쌍둥이 소녀 안옥윤과 미츠코는 일본군의 총격으로 가족을 잃게 되고, 혼란 속에서 둘은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1933년으로 넘어가 시작된다. 임시정부 김구(김홍파) 주석은 의열단 출신 염석진(이정재)에게 비밀 암살 작전을 지시한다. 이 작전의 목표는 조선 총독부 군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거물 사업가 강인국(이경영)을 제거하는 것이다. 염석진은 암살 요원으로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폭탄 전문가 황덕삼(조진웅), 그리고 화끈한 성격의 투사 속사포(최덕문)를 선발한다. 한편, 강인국의 딸 미츠코는 사실 옥윤의 쌍둥이 자매로, 일본인 장교 다카하시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암살단은 이들의 결혼식 날 암살을 계획하지만, 정보가 새어나가면서 계획은 실패로 끝난다. 이 과정에서 염석진이 실은 일본의 이중간첩임이 드러나고, 그는 암살단의 정보를 일본 측에 넘기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또 다른 축으로는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그의 동료 영감(오달수)이 등장한다. 그들은 독립군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점차 진정한 애국자들이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특히 하와이 피스톨은 안옥윤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되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암살단은 두 번째 기회를 노리게 되고, 이번에는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열리는 강인국과 카와구치의 만찬을 노린다. 하지만 이중간첩 염석진의 배신으로 인해 계획은 또다시 위태로워진다. 이 과정에서 안옥윤은 자신이 미츠코의 쌍둥이 자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최종 작전에서 암살단은 끝내 카와구치와 강인국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황덕삼과 속사포는 목숨을 잃게 된다. 안옥윤은 염석진의 배신을 알고 그를 처단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하와이 피스톨은 옥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영화는 1949년으로 시간이 흘러, 살아남은 안옥윤이 미국으로 망명한 염석진을 찾아가 복수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염석진은 16년 동안 착실히 미국에서 삶을 꾸려왔지만, 과거의 배신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역사적 배경
'암살'은 일제강점기 중에서도 특히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는 일본의 식민 통치가 가장 가혹했던 때로, 조선어 사용 금지, 창씨개명 강요 등 문화적 탄압이 심했던 시기다. 또한 만주사변(1931)과 중일전쟁(1937) 사이의 기간으로, 일본이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조선을 병참기지화하던 때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상해 임시정부는 실제로 1919년 4월에 수립되어 광복 때까지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김구 주석은 실존 인물로, 임시정부의 주요 인물이자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적극적인 항일 투쟁을 이끌었다. 영화에서 그려진 암살 작전은 직접적으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한인애국단이 수행했던 여러 의거들(이봉창의 의거, 윤봉길의 의거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경성(현재의 서울)은 당시 일본의 식민 지배하에 급속한 근대화가 진행 중이었다. 미쓰코시 백화점(현재의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같은 현대적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전통과 근대가 공존하는 복잡한 도시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경성의 이중적 풍경은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잘 재현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친일파 인물인 강인국은 직접적인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당시 일제와 결탁해 부를 축적했던 다수의 조선인 기업가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식민 지배 하에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며 일본의 식민 정책에 협조했다.
또한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중간첩의 문제는 당시 독립운동 진영 내부의 실제 고민이었다. 일제의 감시와 침투로 인해 독립운동 조직 내에 일본의 스파이가 있었고, 이로 인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되거나 작전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었다. 영화 속 암살 작전이 벌어지는 1933년은 실제로 한인애국단의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로,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의거(1932)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 의거는 상해 임시정부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얻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총평
'암살'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극 액션 영화 중 하나로, 개봉 당시 1,2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최동훈 감독은 일제강점기라는 무거운 역사적 배경을 다루면서도, 대중적인 오락성과 작품성을 균형 있게 조화시켰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역동적인 액션 장면이다. 복잡한 인물 관계와 이중간첩, 쌍둥이 자매의 비극적 운명 등 여러 플롯이 유기적으로 얽히면서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암살 작전 장면들은 화려한 액션과 함께 인물들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며,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선 깊이를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의 큰 강점이다. 전지현은 냉철한 저격수 안옥윤과 친일파 딸 미츠코의 이중 역할을 소화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고, 이정재는 이중간첩 염석진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하정우의 하와이 피스톨은 코믹한 요소와 비극적 요소를 오가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영화는 또한 시각적으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한 미술과 의상, 그리고 세련된 촬영 기법은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미쓰코시 백화점과 같은 실제 장소들을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한 노력이 돋보인다. 역사적 측면에서 '암살'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을 다루면서도, 단순한 민족주의적 서사를 넘어 인간의 선택과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염석진으로 대표되는 이중간첩의 문제는 당시 식민지 조선인들이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과 생존을 위한 선택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