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1950년대 미국의 가상 사막 마을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이야기다. 영화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연극에 관한 TV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시작하는데, 흑백으로 촬영된 다큐멘터리와 컬러로 표현된 연극 자체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연극 속 이야기는 유명한 사진작가 오버 스텔라(제이슨 샤츠만)가 세 딸들과 어린 아들, 그리고 최근 사망한 아내의 유골을 가지고 '주니어 스타게이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그는 유명 배우 미지 스타버크(스칼렛 요한슨)와 그녀의 딸 딘시(그레이스 에드워즈)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도시 전체가 갑작스러운 외계인의 방문으로 인해 격리되면서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외계인의 등장은 과학자, 군인, 정부 관료들을 이 작은 마을로 불러모으고, 주민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것의 의미를 이해하려 애쓴다. 동시에 오버와 미지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형성되고, 각 캐릭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실과 불확실성에 대처해 나간다. 영화 속 연극과 다큐멘터리라는 이중 구조는 이야기에 또 다른 차원의 복잡성을 더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과 허구, 예술과 삶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영상미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영상미는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시각적 스타일리즘의 정점을 보여준다. 장난감 같은 미니어처 세트와 완벽하게 대칭적인 구도, 그리고 파스텔 색상의 향연은 1950년대 미국 사막 마을이라는 배경을 동화적이면서도 복고적인 분위기로 재창조한다. 특히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모텔, 다방, 주유소 같은 장소들은 하나하나가 예술적으로 세심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마치 빈티지 엽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 속 흑백 다큐멘터리 부분과 컬러로 처리된 연극 부분의 시각적 대비는 이야기의 메타적 구조를 강조하면서도, 각 세계가 가진 고유한 미학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흑백 장면들은 50년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질감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컬러 장면들은 앤더슨 감독 특유의 선명하고 채도 높은 색감으로 가득 차 있다.
로버트 옐로윗의 촬영은 앤더슨 감독과의 오랜 협업 경험을 바탕으로 감독의 비전을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수평 패닝과 줌인, 줌아웃을 활용한 카메라 움직임은 마치 그림책을 넘기는 듯한 리듬감을 만들어내고, 인물들을 정면으로 촬영한 클로즈업 숏들은 그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한다. 특히 외계인의 등장 장면이나 사막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에서 빛과 그림자의 사용은 영화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애덤 스톡하우젠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50년대 원자력 시대의 레트로 미래주의적 요소들을 재해석하여, 동시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어딘가 낯설고 초현실적인 공간을 창조해낸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색채 팔레트는 사막의 황토색과 하늘의 파란색을 기본으로, 이에 대비되는 선명한 빨강, 노랑, 초록색 소품들이 시각적 강조점으로 사용된다.
총평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더욱 심화시키면서도 새로운 주제적 영역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1950년대 냉전 시대 미국의 외계인 공포증과 원자력 시대의 불안을 다루는 듯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예술의 본질, 상실과 그리움, 그리고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제이슨 샤츠만, 스칼렛 요한슨, 톰 행크스, 에드워드 노턴 등 쟁쟁한 배우들은 앤더슨 감독 특유의 절제된 연기 스타일에 완벽하게 녹아들면서도, 각자의 캐릭터에 미묘한 깊이와 복잡성을 부여한다. 특히 샤츠만이 연기한 오버 스텔라의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요한슨이 표현한 미지의 고립된 슬픔은 영화의 화려한 시각적 표면 아래 흐르는 감정적 깊이를 만들어낸다.
영화의 메타적 구조는 독특하면서도 때로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연극에 관한 다큐멘터리라는 설정과 그 속에서 또 다시 현실과 허구가 뒤섞이는 구조는 관객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한 구조는 결국 예술 창작의 과정과 예술가의 개인적 경험이 작품에 반영되는 방식에 대한 앤더슨 감독의 성찰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영화 속 외계인의 등장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각 캐릭터들이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죽음, 사랑, 영감의 순간들—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해석 공간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가장 큰 매력은 감독의 독특한 미학적 세계와 철학적 사유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방식일 것이다. 앤더슨의 영화는 항상 시각적으로 매력적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화려한 표면 아래 더 깊은 존재론적 질문들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에서 무엇인가?"라는 영화 속 반복되는 질문은 단순히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반영한다. 영화의 결말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앤더슨은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 더 많은 층위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초반에는 앤더슨 특유의 시각적 스타일과 유머에 집중하게 되지만, 반복해서 보면 영화가 던지는 더 깊은 질문들과 캐릭터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 영화가 모든 관객에게 호소력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앤더슨의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나 직선적인 내러티브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난해하거나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앤더슨의 팬이거나 영화적 실험과 미학적 탐구에 열린 마음을 가진 관객이라면,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2023년의 가장 흥미로운 영화 경험 중 하나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