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택시운전사'는 2017년 장훈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영화로,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까지 태워다 준 서울의 택시기사 김사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1980년 5월, 서울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는 김만섭(송강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만섭은 돌아가신 아내 대신 초등학생 딸 은정(유해진)을 홀로 키우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에게는 월세와 자동차 할부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어느 날 독일에서 온 외국인 기자(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게 된다. 이 외국인은 독일 공영방송의 기자 피터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광주까지 데려다주면 큰돈(1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급한 돈이 필요했던 만섭은 광주가 어디인지도 잘 모르지만, 하루 만에 다녀오면 된다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들이 광주로 향하는 길은 예상외로 험난하다. 계엄군이 도로를 봉쇄하고 있어 우회로를 택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만섭은 점차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하게 된다. 마침내 광주에 도착한 두 사람은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한다. 시내는 계엄군에 의해 고립되어 있었고, 군인들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피터는 이 상황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하고, 만섭은 처음에는 두려움과 혼란을 느끼지만 점차 광주 시민들의 용기와 연대에 감명을 받는다.
광주에서 만섭과 피터는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과 대학생 재식(류준열)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 이들의 도움으로 만섭과 피터는 계엄군의 감시를 피해 광주의 실상을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만섭은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광주 시민들에 대한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 만섭은 피터의 취재를 끝까지 돕기로 결심하고, 그들은 목숨을 걸고 피터가 촬영한 필름을 광주 밖으로 반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계엄군의 추격을 피해 광주를 빠져나온 그들은 서울로 돌아와 피터가 필름을 독일로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만섭은 피터를 공항으로 데려다주며 작별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시간이 흐른 후, 성인이 된 만섭의 딸 은정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추적하는 장면과 함께,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가 2003년 한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김사복을 찾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피터(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은 독일과 전 세계에 방송되어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역사적 배경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즉 5·18 광주 민주화 운동(광주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한다.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민주화 운동 중 하나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이후,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군 내부의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점차 정권 장악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었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정치활동을 금지시켰으며, 김대중, 김영삼 등 정치인들을 체포했다.
다음 날인 5월 18일, 계엄 확대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가 광주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수부대를 비롯한 계엄군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이를 진압하려 했고,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결국 시민들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무장하게 되었고, 계엄군은 일시적으로 광주에서 철수했다. 5월 21일부터 시민들은 자치적으로 도시를 운영했지만,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다시 진입하여 무력으로 저항을 진압했다. 공식 발표로는 사망자 수가 200여 명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군사 정권은 광주의 상황을 '북한과 연계된 폭동'으로 왜곡했고, 언론은 철저히 통제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은 광주의 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서울의 택시기사 김사복의 도움으로 광주에 들어가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과 시민들의 저항을 카메라에 담았다. 힌츠페터의 영상은 5월 22일 독일에서 처음 방송되었고, 이후 일본 NHK와 미국 ABC 등 세계 각국의 방송을 통해 전파되었다. 이 영상들은 한국 군사 정권의 선전과 달리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한 잔혹한 탄압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는 오랫동안 5·18의 진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군사 정권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관련 정보를 통제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야 점차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1995년에 이르러서야 전두환과 노태우 등 책임자들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 2018년에는 5·18 당시의 헬기 사격을 포함한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힌츠페터는 2003년 한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자신을 광주로 데려다준 김사복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김사복은 2016년 힌츠페터가 사망한 후에야 그의 아들 김승필을 통해 정체가 알려지게 되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총평
처음 '택시운전사'를 극장에서 봤을 때, 나는 솔직히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또 하나의 무거운 역사물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니었을 거다. 1,200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있었다. 이 영화가 참 똑똑하다고 느낀 건, 5·18이라는 무거운 역사를 정치적 구호나 거창한 민족 서사로 포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송강호가 연기한 김만섭이라는 서울 택시기사,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나 삼촌뻘 되는 평범한 아저씨의 눈을 통해 광주를 보여준다. 이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만섭은 처음엔 그저 돈이 필요해서, 외국인이 제시한 10만원에 혹해서 광주행을 결정한다. 정치? 민주화? 그런 거창한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남 일에 끼어들지 않고, 그저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쁜 소시민, 그게 바로 만섭이었다.
송강호는 역시 송강호다. 초반부 코믹한 연기부터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고 변화하는 과정까지, 그 감정선을 놀라운 디테일로 표현해낸다. 특히 광주 시민들이 서로를 돕는 모습을 보며 갈등하는 눈빛,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순간들... 그런 연기를 보면 송강호가 왜 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인지 알 수 있다. 유해진이 연기한 광주 택시기사 태술이나 류준열의 대학생 재식 캐릭터도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각자의 사연과 존재감이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이들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독일 기자 피터 역의 토마스 크레취만도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한국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1980년 광주 거리를 재현한 미술 작업도 놀랍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세트인가?'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특히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계엄군과 대치하는 장면이나 도청 앞 집단 발포 장면은 실제 기록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함이 있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순간들.
다른 역사물과 달리 이 영화가 훌륭한 점은 교과서 같은 설명이나 억지스러운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섭과 피터의 어설픈 의사소통, 태술의 꾸밈없는 환대, 재식의 순수한 열정... 그 모든 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심지어 웃음도 있다! 그런 일상적 모습들 사이로 역사의 비극이 서서히 스며드는 방식이 관객을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물론 역사적 고증에 약간의 허용치를 둔 부분도 있다. 실제 김사복과 달리 만섭은 홀아비 설정이고, 광주에서의 사건들도 각색되었다. 하지만 이건 역사를 왜곡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5·18에 공감하게 만들기 위한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5·18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분명하다. 일부에서는 이 영화가 광주 항쟁의 정치적 맥락을 단순화했다거나, 외국인 기자를 통해 광주를 재발견하는 구조가 '백인 구원자' 클리셰라는 비판도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어떤 영화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담아낼 순 없는 법. 이 영화가 선택한 지점 - 평범한 사람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기 - 는 충분히 가치 있는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가장 마음에 든 건, 만섭이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겁도 많고, 이기적이고, 때론 비겁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나나 당신 같은 평범한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 그가 역사의 한복판에서 자신도 모르게 용기를 내는 순간, 그건 정말 가슴 뭉클하다. "택시기사가 손님을 무사히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것이 의무"라는 그의 말은, 사실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지켜야 할 소소한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택시운전사'의 진짜 힘은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아주 작은 선택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에 있다. 만섭은 그저 딸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었던 평범한 아버지였다. 그런 그의 작은 선택이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양심에 따라 행동할 때, 그게 모여 세상을 바꾼다는 것. 참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진리다.
최근 몇 년 사이 역사물이 많이 나왔지만, '택시운전사'만큼 내 마음을 오래 붙잡은 영화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 생각했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대부분의 우리는 만섭처럼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에게 이 영화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이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도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영화관을 나온 지 한참 지났는데도 그 질문이 계속 따라오는 영화. 그런 영화가 바로 진짜 명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