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동일한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히라야마는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단순한 일을 하지만, 그의 일상에는 묘한 평온함과 만족감이 깃들어 있다. 그는 출퇴근길에 카세트 테이프로 펫숍 보이스, 니나 시몬, 루 리드와 같은 클래식 록 음악을 들으며,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먹고 책을 읽고, 퇴근 후엔 작은 아파트에서 식물을 돌보며 단출하지만 충만한 삶을 산다. 어느 날 새로운 동료 타카시가 함께 일하게 되면서 히라야마의 평온한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이어서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조카 니코가 갑자기 찾아오면서 그의 과거와 현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조카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히라야마가 실은 복잡한 과거를 가진 인물이며, 현재의 단순한 삶이 그가 의식적으로 선택한 결과임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단조롭게 보이는 일상 속에서 작은 순간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소중히 여기는 한 인간의 내면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영상미
빔 벤더스 감독과 프란츠 루스티그 촬영감독이 만들어낸 '퍼펙트 데이즈'의 영상미는 도쿄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분주한 시부야 교차로 대신, 그들은 조용한 주택가와 공원, 그리고 히라야마가 관리하는 공중화장실의 깔끔한 공간을 포착한다. 특히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장면들은 마치 의식과도 같은 경건함을 담고 있어서, 평범하고 심지어 더럽다고 여겨질 수 있는 공간과 행위를 존엄하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아침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모습을 담은 히라야마의 사진들이나, 그가 매일 아침 보는 창밖 풍경의 미묘한 변화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 깃든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35mm 필름으로 촬영한 영상은 따뜻한 질감과 깊이를 선사하며,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품은 히라야마의 캐릭터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도쿄의 도시 풍경이 단순한 배경이 아닌 히라야마의 내면을 반영하는 장치로 활용되는 점도 인상적이다. 빌딩 숲 사이에 남아있는 작은 공원, 빽빽한 도시 속 외로이 서 있는 나무들, 그리고 현대적 디자인의 공중화장실은 모두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평온을 지키는 히라야마의 존재를 상징한다. 특히 밤의 도쿄를 담은 장면들은 조용하고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외로움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히라야마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카메라는 대부분 차분하고 정적이지만, 가끔 히라야마의 시선을 따라 나무 꼭대기나 하늘로 향하며 일상 너머의 초월적 순간을 포착한다. 이러한 시각적 리듬은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히라야마의 내면 여정을 완벽하게 보완한다.
총평
'퍼펙트 데이즈'는 요란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 없이도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야쿠쇼 코지의 연기가 이 영화의 핵심인데, 그는 말보다 표정과 몸짓으로 히라야마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특히 그의 눈빛에 담긴 따뜻함과 쓸쓸함,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은 많은 대사 없이도 캐릭터의 깊이를 전달한다. 영화의 리듬은 히라야마의 일상처럼 규칙적이면서도 지루하지 않은데, 이는 빔 벤더스 감독의 노련한 연출력 덕분이다. 관객은 히라야마와 함께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그의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음악을 들으며, 그가 발견하는 작은 기쁨들에 동참하게 된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과거에 대해 명확한 설명 대신 힌트만 제공하는데, 이런 여백은 오히려 캐릭터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내가 특히 좋았던 점은 영화가 히라야마의 현재 삶을 '하향적 선택'이나 '실패의 결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그가 의식적으로 추구한 평화와 만족의 형태로 그린다는 점이다. 소비주의와 성공 지향적인 현대 사회에서 이런 메시지는 신선하고 위로가 된다. 물론 이 영화가 모든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지는 않을 것이다. 극적인 사건이나 빠른 전개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천천히 영화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히라야마의 일상에 동참한다면, 의외로 깊은 몰입감과 감동을 경험할 수 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작은 디테일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데, 히라야마가 소중히 여기는 카세트 테이프 컬렉션, 그가 찍는 나무 사진들, 그리고 그의 정돈된 작은 집은 모두 그의 캐릭터와 인생 철학을 반영한다. 이런 세심한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퍼펙트 데이즈'는 결국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진정한 행복과 만족이란 무엇인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영화는 삶의 의미가 거창한 성취나 물질적 풍요가 아닌, 매일의 작은 순간들을 온전히 경험하고 감사하는 데 있을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온 후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순간들, 아침 햇살, 길가의 나무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시선을 바꾸고 마음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좋은 영화가 아닐까. '퍼펙트 데이즈'는 2023년 칸 영화제에서 야쿠쇼 코지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작은 변화와 위로를 선사하는 특별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