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하이재킹'을 보고 나왔는데 생각보다 훨씬 강렬한 경험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게 더 소름 돋게 만들었다. 영화는 1976년에 있었던 에어프랑스 139편 납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텔아비브에서 파리로 가던 비행기가 아테네에서 환승하던 중 독일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된 사건이다. 납치범들은 비행기를 우간다 엔테베 공항으로 끌고 가서 이스라엘에 갇힌 동료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승객 중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인들을 골라내고, 다른 사람들은 점차 풀어주면서 인질극을 이어간다. 영화는 인질이 된 승객들, 테러리스트들, 이스라엘 정부와 군 당국 등 여러 시점을 오가며 7일간의 긴박한 상황을 보여준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건 베르나르와 마리암 부부(다니엘 브륄, 로잘린드 엘라시저)의 이야기였다. 베르나르는 유대인인데도 프랑스 국적을 내세워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결국 정체가 들통나 가족 모두 인질이 된다. 비행기 안에서의 공포와 엔테베 공항 터미널에 갇힌 후의 불안감이 화면에서 생생하게 전해졌다. 한편 이스라엘에서는 총리 이츠하크 라빈(리오르 아쉬케나지)이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하면서도 동시에 요니 네타냐후(앙헬 보니) 대령에게 구출 작전을 준비하도록 지시한다. 특수부대원들은 4,000km나 떨어진 적지에서 어떻게 인질을 구할지 머리를 싸맨다. 영화는 인질들이 겪는 고통, 테러리스트들 내부의 갈등, 특수부대의 준비 과정을 번갈아 보여주다가 마침내 7월 4일 감행된 전격 작전으로 치닫는다. 90분간의 기습 공격으로 대부분의 인질은 구출되지만, 요니 대령을 포함해 몇몇은 목숨을 잃고, 그 희생의 무게가 구출의 기쁨과 함께 가슴에 남는다.
역사적 배경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70년대 중동 정세를 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세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비행기 납치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자주 쓰던 시기였다. 특히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들이 테러로 희생된 이후, 이스라엘은 테러와의 전쟁에 더욱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우간다가 납치된 비행기의 종착지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당시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은 팔레스타인 단체들과 친했고, 이스라엘과는 적대적이었으니까.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영화는 꽤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1970년대 중반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이 전 세계적인 이슈였던 때다. 67년 6일 전쟁과 73년 욤 키푸르 전쟁을 거치면서 중동은 더 복잡한 화약고가 됐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위해 테러라는 카드를 자주 썼다. 영화에서 보면 독일 좌파 과격단체(바더-마인호프 같은)와 팔레스타인 해방 단체가 손을 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당시 국제 테러리즘의 새로운 양상이었다. 감독은 납치범들의 정치적 주장과 배경을 꽤 공정하게 다루려고 노력한 것 같다. 하지만 역시 폭력이 초래한 인간적 비극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스라엘의 '테러와는 절대 협상 안 한다'는 원칙과 '자국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한다'는 정책 사이에서 고민하는 장면들이 꽤 현실감 있게 그려졌다.
엔테베 작전은 지금도 대테러 작전의 교과서로 불린다. 정보 수집부터 계획, 그리고 대담한 실행까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작전을 성공시켰으니까. 영화를 보면 작전 준비와 실행 과정이 디테일하게 나오는데, 특수부대원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느껴진다. 요니 네타냐후의 죽음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그의 동생이 바로 나중에 총리가 된 베냐민 네타냐후인데, 이런 가족사도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영화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담으면서도, 각 인물들의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을 통해 더 인간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한 감정과 긴장감이 화면에 담겨 있다.
총평
정말 숨 막히는 스릴러였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걸 감안하면 더 놀랍다. 감독은 사건의 주요 요소들을 존중하면서도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냥 액션 영화가 아니라 인간 드라마로서 깊이가 있었다. 인질들의 공포, 납치범들의 내면 갈등, 구출 작전을 준비하는 군인들의 부담감이 모두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특히 구출 작전 장면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클로즈업과 핸드헬드 카메라를 활용한 촬영 기법이 현장감을 더했고, 90분 넘게 이어지는 작전 장면은 마치 실시간으로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줬다. 배우들 연기도 정말 좋았는데, 특히 인질 역할을 한 배우들은 극한 상황에서의 공포와 희망을 너무 잘 표현해서 가슴이 아팠다.
이 영화의 가장 좋았던 점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시각을 보여주려 했다는 거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인질들과 구출 작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납치범들도 그냥 악당으로 그리지 않고 그들의 복잡한 동기와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 납치범 중 한 명인 윌프리드(다니엘 브륄)의 내적 갈등이나 인질들과의 미묘한 관계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역사를 흑백논리로 단순화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시도가 보였다. 또 테러와 대테러 문제를 다루면서도, 모든 폭력의 사이클이 결국 더 많은 비극을 낳는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하고 있다. 작전은 성공했지만, 희생자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단순한 승리의 서사를 복잡하게 만든다.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다. 실제 사건을 영화화하다 보니 일부 사실이 각색되거나 생략된 부분이 있다. 2시간짜리 영화에 모든 걸 담기는 힘들었겠지만, 우간다 측 시각이나 당시 국제사회의 반응 같은 부분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또 인질 중 몇몇 캐릭터는 좀 뻔하게 그려진 느낌이었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인물들을 보여줬다면 영화가 한층 더 풍성해졌을 텐데.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실화 기반 영화가 어떻게 사실성과 드라마적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단순히 과거 사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 오늘날 국제 관계와 테러와의 전쟁에 주는 의미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하이재킹'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 중에서 가장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스릴러로서 재미있으면서도 역사적 사건을 존중하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정 사건을 통해 더 큰 질문들—폭력의 정당성, 인간 생명의 가치, 이념과 신념의 한계 등—을 던지고 있다. 40년도 더 지난 사건이지만, 테러와 대테러, 민족 갈등과 국제 정치의 복잡성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 속 사건을 통해 지금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단순한 역사 재현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극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보여줌으로써, 비극적 사건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게 만든다. 누구든 현대 국제 정치와 중동 문제에 관심 있다면 꼭 한번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