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며칠 전에 친구 추천으로 '1947 보스톤'이란 영화를 봤다. 솔직히 처음엔 별 기대 안 했는데 의외로 꽂혀서 끝까지 봤음. 요새 역사물 영화 많이 나오는데 이 영화는 좀 달랐달까? 아무튼 봤으니 리뷰 한번 남겨본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끝나고 고향 보스톤으로 돌아온 토마스라는 전역 군인의 이야기로 시작해.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밤마다 악몽 꾸고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전형적인 전쟁 트라우마 있는 캐릭터지. 근데 고향에 돌아와 보니 자기가 기억하던 보스톤이랑은 많이 달라져 있더래. 경제적으로 망가지고 범죄도 늘었고. 우연히 옛 여자친구 캐서린이랑 마주치게 되는데, 이 여자가 지금은 지역 신문사에서 정치 비리 취재하는 기자가 돼있음. 근데 그때 토마스가 전쟁에서 같이 싸웠던 친구 마이클이 의문의 사고로 죽었다는 얘길 듣게 되고, 뭔가 이상한 느낌에 파헤쳐보기로 함.
마이클의 아파트 뒤지다가 발견한 메모장이랑 신문 스크랩을 보면서 의심이 커졌는데, 특히 '페이퍼클립'이란 단어가 자꾸 나와서 뭔가 했더니... 알고 보니 전쟁 끝나고 미국 정부가 나치 과학자들 몰래 데려와서 로켓 기술 같은 거 개발하던 프로젝트였음. 완전 충격적이었는데 찾아보니까 실제로 있었던 일이래. 토마스랑 캐서린이 함께 이 비밀을 파헤치면서 보스톤의 정치인들이랑 비즈니스맨들이 이 계획에 연루된 걸 발견하게 됨. 항구에서의 추격전이랑 어두운 창고에서의 총격전 장면은 진짜 손에 땀 쥐게 만들었음. 결국 마이클이 이 음모를 폭로하려다 살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토마스랑 캐서린이 증거 확보해서 신문에 터뜨리긴 하는데... 뭔가 찝찝한 결말이었어. 큰 변화 없이 일부 연루자들만 가벼운 처벌 받고 대부분은 무사히 넘어감. 마지막에 토마스가 항구 보면서 "이게 현실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네.
사회적 의미
이 영화 보고 제일 놀란 건 '페이퍼클립 작전'이란 게 실제로 있었다는 거였음. 미국이 나치와 싸워 이긴 정의의 편인 척하면서 뒤로는 나치 과학자들 데려와서 활용했다니... 이런 이중성을 영화가 꽤 직설적으로 까발리는데, 뭔가 불편하면서도 솔직해서 좋았음. 토마스의 전쟁 트라우마 묘사도 리얼했다. 특히 한 장면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 듣고 바닥에 엎드리는 장면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다 쟤 뭐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당시엔 PTSD란 개념도 없었을 텐데, 사회가 전쟁 돌아온 병사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잘 보여줌. 친구가 "이제 전쟁은 끝났어, 그냥 잊으라고" 하는데 토마스가 "넌 거기 없었잖아"라고 쏘아붙이는 장면에서 진짜 먹먹했음.
또 캐서린이라는 여자 기자 캐릭터도 좋았는데, 40년대 보스톤에서 여자 기자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잘 보여줌. 진짜 열받게 하는 장면이 있는데, 편집장이 "여자가 왜 이런 위험한 기사를 써? 패션이나 문화면 기사나 쓰지"라고 말하는데 진짜 답답해서... 근데 캐서린이 묵묵히 자기 길 가는 모습이 멋있었음. 이 영화 보면서 계속 든 생각이 '역사는 반복된다'는 거였어. 국가 안보란 이름으로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언론은 권력의 눈치 보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은 위험에 처하고... 이런 구조가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씁쓸했음. 특히나 영화 후반부에 토마스가 "이게 미국이야. 우리가 싸웠던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의미심장함.
총평
일단 영화 분위기 자체는 정말 좋았음. 보스톤 항구의 안개, 담배 연기 자욱한 바, 옛날 자동차들, 빈티지한 의상... 40년대 분위기 제대로 살렸더라. 토마스 역할 맡은 배우도 괜찮았는데, 말은 별로 안 하고 표정으로 연기하는 스타일이라 내면의 고통을 잘 표현했음. 캐서린 역할 맡은 배우도 진짜 똑부러지면서도 감정선 있는 연기를 잘 해줘서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음. 다만 좀 아쉬운 점도 있었어. 중간 부분이 살짝 루즈하달까? 약간 늘어지는 느낌도 있고. 또 갑자기 밝혀지는 진실들이 좀 급하게 전개되는 느낌도 있었고. 한 정치인이 갑자기 태도 바꾸는 장면은 좀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실제 역사적 사건이랑 픽션이 섞여있어서 가끔 헷갈릴 때도 있었고. 그래도 요즘 영화들이 역사를 그냥 배경으로만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진짜 역사의 어두운 면을 직접적으로 다뤄서 좋았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은 것도 현실적이었고. 뭐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충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음. 특히 "진실을 아는 게 항상 정의로운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메시지가 솔직하게 다가왔어. 내 점수는 10점 만점에 7.5점 정도?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볼만한 영화. 킬링타임용으로 봤다가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